- 작성시간 : 2009/03/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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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 세상만사 잡담

가끔 생각난 공상을 살펴보면 '왜 이런 소재는 만화로 쓰이지 않을까' 라는 것들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식견이 좁아서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흔히 만화,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들 하지만 의외로 한정적인 부분도 있으니까요. 생각난 것 몇 가지만 말해보겠습니다.
1. 족구를 소재로 한 만화
현재까지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극중에서 스토리상 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족구를 하는 씬은 존재할 지 몰라도 아얘 이를 소재로 한 만화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과거 '피구왕 통키' 시절처럼 화려한 액션과 필살기로 보는 독자들을 흥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든, 아니면 리얼액션 추구를 하든 그것은 시장의 수요가 결정할 일입니다. 본격 스포츠만화를 절실히 그리고 싶은데 마침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시는 작가 지망생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세요.
예상 줄거리 : 저 먼 경상도에서 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초인적인 발놀림을 가지고 있는 태호는 우연히 족구 세계선수권 대회에서의 모습을 보게 되고 열광한다. 마침 망해가는 족구부를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최소라 선생은 올해 신입생으로 들어 온 태호에게 '자신의 족구부에 들어가면 세계진출도 문제없다' 라는 말을 하게 되고, 어린 시절 전설의 족구인이었던 고조 할아버지의 유언을 되뇌이고는 싸인해 버리는데...
2. 지우개 따먹기를 소재로 한 만화
미묘한 각도조절이나 스피드있는 경기진행이 매력적인 지우개 따먹기가 외면당한고 있다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하물며 팽이치기로도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만화에서는 지우개의 탄성과 재질, 그리고 누르는 각도에 따른 지우개의 궤적 등을 고성능 컴퓨터에 의존하여 철저히 분석하는 라이벌들과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5개의 전설의 지우개똥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 일행과의 대립이 필요합니다.
또한 초반부터 주인공 일행들을 괴롭게 했던 보스급 캐릭터가 알고보니 아버지였다든가 적의 우두머리와 부하들과의 내분이라는 설정 같은 것이라도 있어야 하겠지요.
3. 가진 자와 못 가진자와의 대립을 소재로 한 만화
'개그' 에서는 많이 나오지만 진득하니 만화로 그릴만한 소재가 못 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못 가진 주인공과 엄친아 주인공과의 스토리 개입 비율을 5:5 로 맞춰 주면 별 문제 없습니다. 물론, 후반에 가서 서로 화해하여 친구가 되거나 엄친아 주인공이 좋아하는 미모의 여인이 도리어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 식의 어설픈 트랜디 설정만 끼여들지 않는다면 확실히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청순하고 예쁜 주연급 여성 캐릭터나 못 가진 주인공의 미래를 투영하는 폐지 수집가 최 노인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야 함은 필수입니다.
결말은 못 가진 주인공이 엄친아 주인공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끝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살하거나, 좀 더 현실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어 매일 엄친아 주인공만 비난하던 못 가진 주인공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는 생계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끝난다든지 말입니다.
4. 최강의 메카닉 조종사 주인공을 바라보는 청소부 이야기.
기존의 로봇만화는 파일럿 자신이 곧 주인공이었지만, 시점을 바꾸어서 로봇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청소부가 주인공이 됩니다. 매일 출동 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청소부에게 욕설을 퍼붓는 츤데레 미소녀 캐릭터라든가 밖에서는 최강의 영웅이지만 화장실에서는 변비나 조루로 고생하는 색다른 면모의 파일럿 등의 개성있는 인물들만 나와준다면 ok.
슈퍼로봇계열이라면 자신도 영웅이 되고 싶은 나머지 몰래 주역이 되는 로봇에 탑승하여 출격하다가 대기권 밖으로 떨어져 즉사하는 것으로 끝나면 되는 것이고, 리얼로봇계라면 평소 지저분한 화장실과 연구소 도꾸다시에 불만을 품은 박사가 청소부를 해고하는 것으로 결말 지으면 되는 것입니다.
5. 기동성이나 파워가 아닌 방어력만 향상되는 슈트를 가진 영웅.
미래에서 온 외계인에게 조르고 졸라 변신슈트를 받게 되었지만 황당하게도 방어력만 무지막지한 성능을 가졌다는 설정입니다. 제가 봤을 때에도 이러한 소재는 지금까지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것 같군요. 때문에 주인공은 매 회마다 악당들을 때려눕히면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아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어떻게 악당들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까. 오늘도 어떻게 악당들을 쓰러뜨릴까' 라며 심각한 사고를 하게 되는 심오한 패턴의 스토리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지요.
파워나 기동성도 업그레이드되는 새로운 슈트를 얻어 싸우게 된다든지, 시간제한도 모르고 싸우다가 카운터가 '0' 이 되는 순간 옥상에서 떨어져 슬프게 생을 마감하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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