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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자 진구와 방관자 도라에몽 12



비겁자 진구와 방관자 도라에몽

이기적이고 소심하며 사리에 밝지 못한 진구는 오늘도 도라에몽을 찾아가 주문을 외우게 된다.

'도라에몽~나말야...'

매일마다 그 텍스트적인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진구의 소망은 언제나 하나, 바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의 집에 얹혀산다는 이유로, 그리고 '친구' 라는 댓가로 인해 도라에몽은 마지못한 척 진구의 허술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도라에몽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꺼내 준 미래의 도구들이 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말이다. 이미 수 백 번 경험해 보았고 그만큼 진구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다. 누구와도 충분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인공두뇌를 가진 도라에몽이니 말이다.

 진구는 도라에몽이 빌려 준 도구들을 기분 내키는 대로, 자신의 목적을 채웠다면 이후 그 필요성을 만들어서라도 남용하기에 이른다. 대다수의 경우 이로 인해 좋지 않은 결말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라에몽은 빌려주기전에 잠깐 생색만 낼 뿐 진구가 그것을 가지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면밀히 감시하고 지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위험하거나 진구의 억울함을 들어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면, 또는 진구가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을 때라든가 우연히 위험에 처한 경우를 목격한 때가 아니라면 태연히 자신의 여가생활을 민끽하는 도라에몽.

 그는 뛰어난 테크놀로지를 과거의 세계로 납품하는 중계자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반대로 불안정한 상태의 진구 친구로서는 방관자의 역할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뒷수습을 하는 것은 그의 몫이지만, 처음부터 도라에몽은 아무 생각없이 도구를 빌려준다는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


 물론, 진구가 아무리 위험한 도구를 사용하다 망친들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이미 미래세계에는 그 도구들을 만들면서 태생적으로 '안전장치' 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지하고 현실세계로 온 도라에몽이지만 진구는 이를 악용하려는 듯 반복적으로 '응석' 을 부리는 것이고 도라에몽은 매일 강박과 압박이라는 두 차원의 힘에 이끌려 무상대여를 반복하게 된다.




자신을 망치는 모든 원인은 바로 자신

 진구는 매우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오히려 그를 괴롭히는 비실이나 퉁퉁이는 부잣집 아들이거나 매우 힘이 센 아이로 '평범하다' 라는 의미에서라면 약간은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둘 다 본심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약한 진구를 괴롭히는 인물들의 주축에 서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진구는 주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도라에몽을 쥐어짜지만 실상은 이렇다. 그들이 진구를 괴롭히는 것은 자신들이 진구보다 우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구는 운동신경이 둔하여 야구시합에서 패배의 장본인이 되고, 작은 체구에 떨어지는 두뇌로 공부나 싸움 둘 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동성의 친구와 어울려 신나게 노는 바람직한 모습보다는 이슬이라는 여자아이에 기대어 정신을 차릴 줄 모른다. 남성이면서도 남성문화 대열에 잘 끼여들려 하지 않는 사람은 남성들의 사회에서도 쉽게 도태되는데, 진구도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구를 퉁퉁이 일당들이 좋아할 리는 없다.

 이런 면에서만 본다면 진구는 과연 약하고 여린 존재여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인물인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진구는 그저 평범한 소년일 뿐이다. 특별히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해관계에서는 의외로 주도권을 잃지 않을 정도로 밝다. 마치 '우매한 사회인' 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나마 진구는 감성보다는 이성에 밝은 인물이다. 자신이 열심히 체력을 다져 퉁퉁이 일당에게 대항할 생각보다는 피하거나 그대로 당하거나 도라에몽의 손을 벌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어차피 비범한 집안에서 뛰어난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아이가 아닌 이상에, 출발점부터 엇갈린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차피 해도 소용없기 때문에, 시간낭비이기 때문에 그는 끈기있게 상위의 클래스로 진입하려는 노력이나 의지를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현실주의자이다. 하지만 도라에몽을 만나면서부터 때때로 자신을 망치는 결과와 대면하게 된다.

'우매한 사회인으로서의 전형' 이 비현실적인 힘에 의지되었기 때문이다.


 진구는 의식이 있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아이이다. 때로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려 하거나 지저분한 장소를 청소해 주기도 한다. 반면에 도라에몽의 도구로 돈을 벌려 하거나 못된 복수를 하는 등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 을 상징하는 자신의 행동 덕분에 때때로 여러가지 꾀임에 넘어가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려 고통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도라에몽이 현실세계로 온 목적

 진구가 있는 세계를 '현실세계' 라고 하는 것은 평범한 인류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극중에서 표현된 미래세계는 '바꿀 수 없는 세계' 이다. 즉, 인류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멋진 도구를 가진 도라에몽은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지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알고있다시피 매번 도라에몽의 도구를 들고 신나게 동네를 휘젓는 진구의 모습은 그리 밝아보인다거나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경우 매우 부정적인 결말을 낳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고백을 하지 못하고 주춤대는 추남을 도와주게 되거나 친구들을 모아 신나는 환타지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이는 예상치 못한 반전의 산물이거나 정말 그렇고 그런 시시한 도구를 사용했을 때의 경우가 지배적이다. 

 분명 도라에몽의 도구는 인간의 행복을 보조해 주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었겠지만 사람들의 무지함과 더불어 사는 사회의 태생적인 한계인 다툼이라는 요인으로 인해 오용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도라에몽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만을 주는 존재일까? 아닐 것이다. 도라에몽이라고 해도 어차피 결국은 자신을 위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까. 어떻게 본다면 '오늘은 진구가 자신이 준 도구로 얼마나 당하고 올 것인가' 라며 몰래 진구를 훔쳐보는 것이 취미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관음증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물론, 스토리상에서 진구의 후손이 진구를 도와주기 위해 보낸 로봇이 도라에몽이기는 하다. 하지만 극중에서의 도라에몽이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는 한 번 의심해 봐야한다.)


도라에몽이 나타내는 의미

 미래의 최첨단 기술이 빚어 낸 비현실적인 도구들을 꿰차고 있지만 도라에몽은 진구의 생활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물론, 이 도구의 안전장치로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 비현실적인 힘으로도'약하고 못난 아이' 를 '잘난 아이' 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도구는 그저 미래시대의 완구일 뿐이다. 기쁨과 경탄의 정도는 현실의 완구를 초월하지만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결국 초월적인 힘으로도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비극적인 작품인 것이다.

 비록 미래에서 온 로봇과 친구가 되어 누구라도 함부로 손에 쥘 수 없는 완구들을 손에넣게 된 진구지만, 그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상하게도 퉁퉁이 일당은 도라에몽을 빼앗으려하거나 노예로 만들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그저 필요할 때만 속보이는 말투로 그를 부를 뿐이다. 진구가 아무리 멋진 도구로 자신들을 괴롭혔을지라도 다음날에는 모두 태연한 척 일상을 보낸다. 어차피 진구녀석은 도라에몽의 도구에 기대어 사는 멍청한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도라에몽은 과학문명의 맹신과 폐혜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비록 처음의 순기능은 긍정적으로 비춰지지만 상당수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많은 도구들을 빌려 쓰면서도 매번 소개되는 새로운 도구들에게 맹신을 가하게 되고,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까맣게 잊고 반복되는 즐거움만 만끽하려 한다.

 
 도구를 집어들고 고민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이는 과학에 얽메어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차피 소비하고 싫증나면 방치하거나 버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모품 논쟁은 단순히 논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현대인들은 매우 무감각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진다고 믿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 새롭고 더 비싼 기술이 등장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선진 기술의 대부분은 역시나 가진 자, 혹은 권력자, 아니면 저 먼 미래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평균적인 삶의 수준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역시나 현대인들이 누리는 상대적인 삶의 수준은 개선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 십년 전에는 영상가전제품들이 당시의 가치로도 수 백 만원이나 한다고 했던가. 현대인들은 이 사실을 회상하며 세상 참 좋아졌다며 감탄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당시의 텔레비전이나 비디오와의 비교대상은 현재의 비디오와 텔레비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홈씨어터나 HD영상시설과 같은 초고가의 최신기술이라는 것이다.



 
결국, 도라에몽에서 놀라울 만한 성능과 기능을 가진 도구들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하지만 이는 허상과 미래의 달콤함만을 좆는 격에 불과한 것이다.

 갑자기 주어진 커다란 '선물' 에 진구는 당황하고 오용하여 본래의 목적을 망치게 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다고 해서 꼭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옳은 것이다. 물론, 사람에게 갑자기 감당하기 힘든 능력을 부여해 주면서 발생하는 부조리와도 일맥상통한 것이다.


 껍질 속에 틀어 박혀 두문불출하고 있는 낙제생의 만화를 읽고 싶다는 작가의 생전의 명언은 현실화 되었다. 아이들에게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온갖 모험과 신문물의 환상을 심어준 작가는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무서운 메시지를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덧글

  • 최조일 2009/04/16 23:49 # 답글

    수백 수천번 경험했어도 주종관계인지라 어쩔수 없겠지요..
  • 쓰레기청소부 2009/04/17 00:23 #

    그러고보니 깜빡하고 스토리상에서 도라에몽이 왜 진구의 친구가 되어주었는지 안써 놨군요. 여하튼 씁쓸한 관계인 것은 사실입니다.
  • 유우지 2009/04/17 00:08 # 답글

    애초에 도라에몽이 온 이유도 진구의 후손이 과거를 바꾸기 위해 진구를 서포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낸것이니 안도와줄수가 없죠
  • 쓰레기청소부 2009/04/17 00:30 #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그리 바뀐 것 같지 않습니다. 구 도라에몽 마지막편이나 도라에몽 극장판을 봐도...아 물론 이슬이하고의 결혼은 그런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 풍신 2009/04/17 02:40 # 답글

    저도 비슷한 이유로 도라에몽을 좀 싫어합니다.

    "애초에 노비타는 자이언의 동생이랑 결혼할 운명인데, 노비타는 그게 싫어서 시즈키와 결혼하도록 운명을 바꾸려고 하지. 하지만 그 미래 시즈카한텐 최악이잖아." (GS 미카미) --->여기에 도라에몽의 정체성이 있지 않나 합니다.
  • 쓰레기청소부 2009/04/17 02:42 #

    맞다! 자이코가 노비타와 맺어질 운명이었죠. 극장판에서는 시즈카가 버젓이 노비타의 신부가 되어있기는 합니다만...
  • 중간자 2009/04/17 06:24 # 답글

    도라에몽 에피소드 수를 생각하면 진구/노비타 군은 적어도 후반부 정도에는 중학교를 갔어야 할 운명이 아니었는가 싶네요. 하지만 영원한 초딩...
  • 엘리스 2009/04/17 10:42 #

    짱구님은 어쩌란 말임.
  • 쓰레기청소부 2009/04/17 13:27 #

    이미 구판 도라에몽은 끝났지만 다시 원래 상태에서 신시리즈가 시작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요. 하지만 도라에몽이 진구를 어렸을 때부터 도와주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 당근 2009/05/29 17:37 # 삭제 답글

    진구가 그나마 성격이라도 착해서 다행이지 성격까지 나쁘면 모든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을것임 =_=
  • 도라에몽 2015/02/10 14:59 # 삭제 답글

    도라에몽129.3cm 도라미는100.0cm
  • 이해했습니다. 2015/04/25 22:02 # 삭제 답글

    그래도 현대라서 그런지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고. 따뜻하고 안전한 집에사니 다행아닐까요. 옛날이었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녀요. 게다가 재수없으면 맹수뱃속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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