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중년의 로망을 느끼고 싶었다. 18


 한때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정의의 주인공이 중년의 나이가 되어 등장하는 경우는 애니메이션 역사상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로봇 애니메이션 장르로 국한된다면 작품의 수는 급감.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작품이란 고작 '역습의 샤아' 와 '겟타로봇 시리즈' 정도 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어느순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미 10년도 더 된 까마득한 시절에 이미 '열혈중년의 멋진 일대기' 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을 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96년에 MBC에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철인 28호 FX' 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철인 28호 FX' 라고 쓰고 '멋있다 잘생겼다 블랙옥스' 라고 느껴지는 작품이 되어 버린 비운을 가지게 되었지만 말이죠. 철인들의 활약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블랙옥스가 초강력 레이저포로 적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철인 28호 FX가 줏어먹기로 피니셔를 날리는 패턴이 좀 마음에 안 들었기에 오히려 이 '매트로 사탄'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명 에피소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의 콤비네이션인 철인과 블랙옥스의 더블 '초능력 펀치!' 가...

이토록 허무하게 방어당한 이유는 바로 40년 전 파괴된 줄로만 알았던 '메트로 사탄' 이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철인 28호 FX의 시대설정은 2002년 이므로 40년 전이라면 무려 '원조 철인' 때 만들어진 로봇이라는 것인데...극중에서 백민(쇼타로)의 나이는 45세로 나오는데 40년 전이 아니라 30여 년 전이 아니던가요...하여튼 일단은 MBC 방영판에서 그렇게 말했으니 패스...


극중에서 백민의 회상장면은 40년 전에 이루어졌던 메트로 사탄과의 결투로 이어집니다.


'힘내 철인! 당장 이녀석을 막지 못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거야!' 라고 말했던 전성기 시절의 백민이군요. 방영 당시에도 예전의 영상을 삽입해 놓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체와 분위기가 너무 달랐으니 말이죠.

그러니까 당시에는 원조 철인 28호와 결투를 벌이던 메트로 사탄이 철인과 함께 화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는 설정이 부가되어 있었습니다. 원작 만화에도 이 괴물로봇이 출현했는지는 원작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메트로 사탄과 같이 화산 속에 갇힌 줄 알았던 쇼타로는 슬픔을 감출 수 없었으나 기적적으로 쇼타로에게로 복귀해 온 철인을 보고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였다는데...

40년 만에 화산에서 살아돌아온 메트로 사탄은 원래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자가재생을 반복하는 악마의 로봇이므로 이 시점부터 점점 강해지고 점점 커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니 새로 만들어진 FX와 블랙옥스도 못 당해낸 것이군요. 여하튼 극중에서는 블랙옥스의 만능 레이저포를 맞고 실신한 이 괴물에게 폭발 에너지를 일부러 흡수하게 함으로써 폭발 시키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능력이 안되니 이렇게라도 해야죠.


 
문제는 메트로 사탄의 회복이 생각외로 빨라서 폭발카운트 다운까지는 한참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백민 탐정은 40년 만에 이루어진 메트로 사탄과의 제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메트로 사탄의 한방펀치! 이상하게도 이 로봇은 사람과 같은 기억력과 지능이 있어 파일럿 없이도 스스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60년 대에 만들어진 로봇이라면 너무 무시무시하고 터무니 없이 하이테크놀로지적입니다.. 사실 이미 완성된 원작 스토리에 대충 끼워넣은 설정이겠지만...


'오늘은 반드시 결판을 내겠다! 40년 전에 못 낸 승부를!!!' 바로 이것이 중년의 로망과 감동을 느끼게 해 준 대사입니다. 사실 최신형 로봇들마저 가볍게 제친 이 메트로 사탄에게 구닥다리 깡통로봇이 대드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상황. 이것이 바로 중년의 힘인가요.


 최후의 일격으로 마주친 두 로봇의 펀치가 서로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철인의 배경음악은 경쾌하고도 코믹하지만 진지한 숙명의 대결 덕분인지 이 순간만큼은 이 싸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펀치가 맞붙은 후 이어진 카운트 다운 작렬! 40년 전에는 화산 속으로 빨려갔지만 40년 후의 미래에는 아무도 이 험난한 폭발 속에서 철인이 살아돌아오리라는 확신을 기대할 수 없겠죠.



기운이 빠진 백민의 눈에 보이는 것은 왠걸! 어디서 많이 보았던 그림자가 폭발 속에서 헤쳐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인! 한쪽 팔만 잃은 채 엄청난 폭발 속에서 살아돌아온 철인의 모습과 40년 전의 대결에서 무사히 살아돌아온 철인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느껴지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고맙다 철인로봇, 너와 같이라면 난 언제까지도 싸울 수 있어'

마지막 백민의 대사와 함께 40년 간의 긴 대결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로 원조철인의 리메이크작을 만들기 보다는 이런 후속편에서 자연스런 오마쥬로 원작을 그려나가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과거의 주인공' 이 후속작에 등장하여 새로 등장한 강력한 적 앞에 터무니없이 당하거나 세월의 영향으로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근육맨2세)을 극도로 싫어하는 취향이라 이런 중년의 활약이 매번 감동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전작의 '원조 철인 28호' 를 계승한 스토리와 세계관을 가지고 기획된 작품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한 '추억' 과 원조 '배불뚝이 철인' 을 쉽게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기는 합니다. 사실 '철인 28호' 라면 국내에서는 '태양의 사자 철인' 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사례가 잦은지라 이 주인공 아버지의 활약을 주의깊게 감상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합니다. 

 당시의 완구 스폰서인 타카라의 영향 때문인지 좀 이상한 면도 존재했던 작품이지만 백민 중년의 감동적인 일대기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니, 단연코 최강의 중년 중 하나를 손꼽으라면 먼저 이 '백민' 이라는 캐릭터부터 지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백민은 메트로 사탄과의 승부에서 정정당당하게 이긴 것은 아니지만...뭐 어떻습니까.(마지막 펀치로 이긴 것이 아닌, 에너지 폭발이 악당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죠.)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덧글

  • 나인원 2009/07/13 04:38 # 삭제 답글

    저런 것이 말이 되는 이유는 딱 한가지 입니다.

    FX보다도 저 구형 철인 28호가 훨씬 강하거든요. 농담 아니고 이마가와 판 철인 28호가 나오기 전까지 저 구형철인 28호의 에너지원은 아예 비밀도 아니고 모름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저 구형 철인의 에너지원은 후원사인 글리코사의 엑상 케러멜을 머리뚜껑을 열고 부어준다는 소리마져 나왔습니다.

    구형철인이 FX보다 강하다는 증거는 FX는 피닉스라는 비행유닛 없이 자력으로 하늘조차 못 나는데, 구형철인은 본체에 바로 로켓트가 있어 하늘도 맘대로 납니다.
  • 쓰레기청소부 2009/07/14 03:16 #

    철인 28호FX 본편에서는 구 철인과 FX가 서로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과는 필살기를 쓰지 않아도 FX의 승. FX는 전체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특정 부위에 집중시킬 수 잇는 구조이므로 애초에 기체가 무겁고 비향기능이 추가되지 않은 것일뿐 구 철인이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극중 내내 엄청난 활약을 보인 이유는 아무래도 백민의 능숙한 조종 솜씨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 삿쨩 2009/07/13 08:44 # 답글

    어렸을 때는 정말 철인 28호가 짱이였는데 요샌 워낙 근사한 로봇들이 많다보니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ㅎㅎ
  • 쓰레기청소부 2009/07/14 03:17 #

    벌써 이 작품이 나온지는 언 17년이 되었고, 국내에 방영된지도 무려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 k군 2009/07/13 10:10 # 삭제 답글

    원조 철인이 더욱더 압도적인 포스가 있습니다,.
    기체의 무장이 월등히 있다고 하더라도 원조 철인의 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식할때로 무식한 노가다식 근성.
    남자들은 이것을 원하지요,.
  • 쓰레기청소부 2009/07/14 03:18 #

    사실 장비로 따진다면 FX쪽이 훨씬 간략하지요. 육탄전과 격투 스타일은 두 기체 모두 같으나 결정적인 것은 구 28호의 경우는 터케느션 위주라는 것이죠.,
  • 샛별 2009/07/13 14:48 # 답글

    FX와 원조철인을 보면
    강철의연금술사의 근육소령과 식육점주인이 생각나요.
    FX와 근육소령은 가꾸어지고, 세련된 미 라면
    원조와 식육점주인은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의 미가 넘치거든요. 오오오...남성의 야성미!!
  • 쓰레기청소부 2009/07/14 03:18 #

    남자의 로망은 중년이 되어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 플로렌스 2009/07/14 10:54 # 답글

    과거의 주인공이 후속작에서 강한 적에게 당하거나 세월 때문에 망가진 모습...저도 정말 싫어합니다. 종종 신작에서 새 주인공을 밀어주기 위한 장치로 쓰긴 합니다만...
  • 쓰레기청소부 2009/07/14 22:24 #

    아니면 라무와 같이 지나치게 약화되고 힘을 잃어 고작 주인공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식으로 등장하는 것도 좀 그렇지요
  • 영원제타 2009/07/14 23:21 # 답글

    아아, 방금 뢰종님 블로그에서 그렌다이저의 카부토 코우지 얘기를 보고 왔습니다요.
  • 쓰레기청소부 2009/07/15 00:23 #

    카부토는 아직 젊으니...그런 취급을 받아도 상관은 없지 않을까요. 아니 무엇보다 원작자의 엄밀한 의도는 아니었을테니...
  • 역설 2009/07/16 20:34 # 답글

    어쩐지 앞에서부터 읽다가 여기서 흠칫했습니다.
    재밌게 본 만화인데... 어쩐지 저 에피소드는 못 봤군요. 저도 저런 형태의 오마쥬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나저나 블랙옥스가 확실히 더 멋졌어요. 변신하는 장난감을 산 것도 기억나는군요 (......)
  • 쓰레기청소부 2009/07/16 21:25 #

    블랙옥스는 전작에 비해 대거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철인은 외형만 조금 변했을 뿐 특별히 뭔가 보여주지 못했죠. 더군다나 결정적인 공격은 죄다 블랙옥스가 맡았으니...
  • 풍신 2009/07/26 12:10 # 답글

    쇼타로가 쇼타가 아니게 되어버렸죠. OTL... 보다보면 쇼타로씨가 조종하는 철인은 무적이란 느낌이었는데...(대신 건방진 꼬마 주인공이 조종하면...철인이...철인이...)

    저때는 옛 철인에 대한 사랑이 있었죠. 팔 한쪽만 날아가고 귀환하니...한데 요즘은 왜 전부다 자폭으로 끝나는지...(황제의 문장에서도 신철인에서도...) 철인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
  • 잠본이 2010/07/04 00:49 # 답글

    사실 저 '폭발 속에서도 반드시 살아돌아오는 철인'은 태양의 사자 최종회가 원조입니다.
    거기서는 아예 태양을 멀쩡히 통과해서 돌아오죠 OTL
    (확신은 없지만 아무래도 감독이 태양의 사자와 동일인이다보니 노리고 집어넣은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 ltsohn 2016/07/23 19:42 # 삭제 답글

    이게 33화 였지요
  • 지나가던 2018/02/13 12:19 # 삭제 답글

    아마 백민(쇼타로) 나이는 45세가 아니라 52세일껍니다초기살정은 그랬는데 방영하면서 또는 더빙판에선 45세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로 마누라인 박사에 나이는 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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