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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 결혼 좀 하고 싶습니다. 34


 예전에 저의 지도교수였던 교수님께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신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좋으신 분들이기도 하고 학생들과의 관계도 좋은 듯 해서 졸업한 지 몇년이 지난 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께 안부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선물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한 졸업생이 교수님께 안부전화를 걸었다더군요. 잘 지내냐는 교수님의 말에 그 졸업생은 흐느끼듯이 말했답니다.

교수님, 저 결혼 좀 하고 싶습니다. 진짜 여기선 더 이상 못살겠습니다! 여자를 보고 싶습니다!

사실 그 분도 전형적인 남중-남고-공대-군대 의 스킬트리를 차근차근히 밟아오신 30대 남성입니다. 문제는 그 지옥스런 스킬트리의 끝은 '취업' 이라는 관문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분이 들어간 회사는 외딴 산골에 위치한 중소기업이었던 것이죠,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 분의 하루일과는 '아침 7시 기상 - 아침 8시 출근 - 밤 12시 퇴근 - 숙소로 복귀' 가 반복되는 패턴이랍니다. 더군다나 이 끔찍한 일과 속에서 하다못해 그 '숙소' 란 외딴 산골에 있는 공장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 비슷한 곳에 불과한 것이지요. 도대체 어떤 회사인지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의외로 그런 곳에 진출하는 졸업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대기업의 공장이나 개발, 연구부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단 회사가 외딴 산골에 있으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벌판인 경우가 많으며 여자는 커녕 사람 한 명 구경하기도 힘든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침7시에 기상하여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업무 때문에 항상 피로한 것은 물론이며 사람을 만나거나 여가시간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할 테이지요. 퇴근하자마자 컨테이너 박스로 직행하여 잠을 청하는 것이 다반사이니 연애는 커녕 가족들과의 시간도 물 건너 간 것입니다.

 물론 요새 취업난과 대조해 본다면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라는 목소리를 내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몇 년전의 이야기이므로 지금의 현실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공계의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취업이 그나마 잘 되는 대신 이런 곳에 취직할 확률이 높은 것이죠. 박봉에 무차별적인 업무량도 서러운 일이지만 그나마 취업을 했다라는 이유로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꾸 가슴은 미어집니다. 과연 나는 이떤 운명에 처해질 것인가. 그리고 미래에 난 이런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결국 하루에 7시간 이상씩 영어공부를 하는 것인가 라는 회의감만 절로 드는 셈이지요.


 안 힘든 곳이 이디있겠냐마는 사실 이쪽 계통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쉽지 않은 길을 택해서 갑니다. 비전이 없는 회사만 아니라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외딴 지방 연구소에서 틀어박혀 제품 개발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지요. 그것이 엔지니어의 운명입니다. 결국 남중-남고-군대-공대 의 스킬트리는 '외딴 곳에서 은둔' 혹은 '이성과 단절' 이라는 보너스 게이지를 축적하기에 이르른 것이죠. 일단 일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리 많은 않은 보수에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는'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제 자신도 상당히 망가질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과연 배부른 소리만 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런 이유로 이공계 출신 직업인들의 경우 모에물이나 일본 미소녀 게임을 즐겨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회와 단절되어 고립된 자신과 유일하게 소통해 줄 수 있는 돌파구로 2차원의 여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여자가 없는 이쪽 업계에서는 미연시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미소녀들만큼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존재도 드물테니 말이죠. 결국 외로운 엔지니어에게는 2차원 미소녀가 진리인 것입니다!



 여하튼 주변의 친구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가 현재 전과를 고려중이라고 합니다. 소모품 취급 받는 것도 싫을 뿐더러 결국에는 비 이공계학과와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사실 이렇게 말한다면 여자에 환장한 놈 같아 보이지만 그녀석도 이제 옵션으로 여자를 좀 만나보고 싶답니다. 요새 결혼이 힘들고 돈도 필요한 때라지만 적어도 제 친구는 사회에 나가면 연애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이지요. 여자에는 관심도 없을 것 같았던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그런 소리를 하니 왠지 모르게 저도 숙연해 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야기가 결혼, 혹은 연애로 치우치는 것 같지만 진정한 문제는 바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합니다. 결혼이나 연애같은 비현실적인 부분을 따나서라도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 다양한 사람들과 직장동료와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 당한다면 분명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 피로도는 매우 심해질 테이니 말이죠. 물론 돈이라도 많이 준다면야 상관 없겠지만...현실은 또 그렇지 않죠. 

 물론 '어차피 취직만 되면 다행인줄 알아라. 배부른 것 아니냐.' 혹은 '직장은 사람 만나는 곳이 아니다. 일을 해서 돈이나 벌 생각을 해라' , '여자 만날려고 직장을 정하냐. 어차피 그런 것은 할 사람은 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한다.' 라는 논리로 제 의견을 반박하신다면 마땅히 할 말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만...요새 이런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도서관에서 하루에 12시간 씩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분명 이런 직장에서 힘겹게 일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씁쓸해지는 것입니다.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덧글

  • eversoul 2009/09/03 06:33 # 답글

    헉! 나도 중남고공대군대 크리..
    하지만 아직 졸업은 안했으니 희망은 가져야지..ㅠ_ㅠ);; 저렇게 되긴 싫어!!!!!!!!!!!!!!!!!!!!!!!!!!!!!!!! 엉엉.ㅠㅠ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2 #

    다른 분야로 진출하신다면 상황은 좀 달리질 것 같습니다.
  • 어어브 2009/09/03 06:50 # 삭제 답글

    솔직히 남중남고공대군대크리 같은건 변명입니다...능력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들 수 있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3 #

    물론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죠. 인생살이가 쉽지 않은 것이 어차피 만사가 다 능력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없으니니까 문제지요
  • blitz고양이 2009/09/03 09:01 # 답글

    와 이거 졸라 슬픈 글인데 왜케 웃음이 나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3 #

    이것은 블랙코미디의 현실...
  • ㅇㅅㅇ 2009/09/03 09:50 # 삭제 답글

    와 이거 졸라 웃긴 글인데 왤케 눈물이 나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3 #

    역시 또다른 반전이로군요. 사실 저도 우울했습니다.
  • 시아초련 2009/09/03 09:57 # 답글

    아, 무섭다 ㅠㅠㅠㅠㅠ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4 #

    100%저렇지는 않지만 분명 염두해 두어야죠
  • 라츠베인 2009/09/03 10:34 # 답글

    와 이거 졸라 안타까운 글인데 왜케 주변인들 생각이 나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4 #

    주변인들...저도 많습니다. 사실 그들도 능력이 떨어져서 저런 곳에 간 것은 아니겠죠
  • 몽몽이 2009/09/03 12:40 # 답글

    마지막 짤방은 흉기입니다... 손발리 오글라듭니따...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4 #

    왠지 남자분 불쌍한 것 같군요
  • tlqkffjaem 2009/09/03 12:42 # 삭제 답글

    최소한 많이 부려먹으면 부려먹은 만큼 인건비를 줘야 하는거아냐 무노동 무임금이 아니라 유노동 무료봉사지 출퇴근시간 정확히 하고 인권비 때먹는넘들은 사형시키면 아마 실업자문제 고임금 고물가 과로 스트레스 기타등등 다해결됄껄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5 #

    우리나라는 유난히도 이공계계통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을뿐더러 원체 한국이라는 것이 일벌레들을 권하는 세상이죠
  • seek boy 2009/09/03 14:14 # 답글

    안습/... 마지막 짤방은 넘 웃기네요 ㅋ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5 #

    웃기지만 남자분에게는 애도를...
  • 물씨 2009/09/03 15:06 # 답글

    음, 초면에 죄송한 말씀을 하게 됐습니다만 -ㅁ-;
    공대남자분들중 연애에 서툰분들이 많은 이유는 어떤 트리(;;)를 탔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 성향이 공대생의 악명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대에 지원하게 만들었겠지요(-_-저를 비롯해서). 아마 머릿속에서 지우셨겠지만 실제로 같은 테크를 탔어도 연애 잘~ 하고 제때 햄복하게 결혼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ㅁ;ㅋㅋ

    어쨌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겁니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모두 분발합시다 -ㅅ-!! (저도-_-..)
    미연시같은 걸 할 시간에 차라리 어디 온라인 동호회라도 듭시다 _-...
  •   2009/09/04 02:36 #

    하지만 연애 목적으로 동호회 들어가면 ... 서툴게 하면 동호회까지 망합니다 (...)
  • 물씨 2009/09/04 09:32 #

    동호회를 망가뜨리느니 자신을 망가뜨리겠다는 박애주의!! ;ㅁ;! 로 미연시를 하게 되는 건가요, 설마? -_-;
    차라리 이기적이됩시다 ;ㅁ;ㅋㅋ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6 #

    트리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실 학창시절에는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구요. 물론 100% 다 저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공대생 커플도 있는걸요...
  • 와일드체리 2009/09/03 15:27 # 답글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ㅜ.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6 #

    휴지 좀 갖다 드릴까요?(퍽)
  • 위니더푸 2009/09/03 15:58 # 답글

    전 공대나온 여자이고 시골에서 공대나온 남자들이랑 아침 8시출근 밤 12시 퇴근도 해봤지만..




    외로운 엔지니어에겐 실물 그냥 여자보다는 2차원 미소녀가 진리였던게 확실합니다. 흑흑흑~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6 #

    실물의 여자도 그냥 공대생으로 보일 경향이...사실 업무가 과다하긴 하죠
  • 포더윙 2009/09/03 17:23 # 답글

    '결혼이나 연애같은 비현실적인 부분을 떠나서라도'

    ;ㅁ: 뭡니까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직장은 사람 만나는 곳 맞습니다... 연봉지급 기능은 직장의 핵심이자 기본기능이지만 달랑 그것만 있는 직장이라면 거기 다니는 걸 '사회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7 #

    요새에는 그런 부분들을 고려지 않는 것이 문제겠지요. 무조건 조건, 그리고 임금입니다. 요새 학생들 보면 그런 사회생활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요
  • journey 2009/09/03 23:02 # 답글

    그나저나 홀아비 냄새의 근원이 밤꽃 냄새라니.....라니....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7 #

    저도 그 냄새 좀 난다고 혼난 적이...
  • 앨리스 2009/09/04 00:19 # 답글

    아... 이거 정말 공감합니다.
    이공계는 취업하기는 비교적 쉽지만, 취업하고 나서 여건과 대우가 너무 안 좋고,
    비이공계는 취업하기는 어렵지만, 취업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죠...
    괜히 다들 약대편입, 의치학전문대학, 혹은 아예 전공과 무관한 행정직 공무원 시험, 로스쿨 쪽으로 빠지는 게 아니겠죠...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8 #

    흔히들 이공계는 job market이 넓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다수가 안좋은 조건의 회사로 가득치 있거든요
  • 우왕 2009/09/04 09:58 # 삭제 답글

    저는 남자간호사인데,

    여자애들이랑 할 얘기 안할 얘기 다 하고 3년동안 부대끼고 살았더니 성정체성이 모호해졌습니다.

    병원 입사 후에는 아예 상전 모시듯 산다고 하더라구요
  • 쓰레기청소부 2009/09/05 00:48 #

    오옷, 완전 반대의 경우로군요. 마치 유아교육과에 들어가 유일하게 남학생으로 남아 있었다던 군대후임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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