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 13


 젊은시절, 초등학교에서는 유명 TV 프로그램이 방송된 후 가끔씩 이런 논쟁이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톰이 나빠 제리가 나빠?' '당연히 매번 불쌍한 제리를 못 잡아 안달인 톰이 나쁜 녀석이지!' '오히려 제리가 더 사악하지 않냐?'

'왠지 저 코요태 녀석 죽여버리고 싶어''난 그 보다도 매번 코요태만 놀래키는 로드런너가 더 짜증나'

'돼지가 저 버니를 잡아먹게 될 날은 언제일까?''버니처럼 똑똑해야 성공할 수 있겠지'
 

 바로 그 '유명 프로그램' 이란 바로 '톰과 제리' 와 '루니 툰즈' 입니다. 사실 이 두 작품의 핵심 주제란 바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동물들과의 기막힌 접전인데, 일단 '악역처럼' 등장하여 활약을 보이는 동물이 등장하고 먹잇감의 표적이 되는 '선역같은' 동물이 등장하여 대립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지요

 톰(고양이)과 제리(쥐), 코요태와 로드러너(뻐꾸기), 실베스터(개)와 트위티(새) 라...사실 처음에는 먹잇감을 다투는 동물의 왕국 비슷한 시나리오가 평쳐질 것 같지만 이 만화들의 재미요소는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들의 황당 몸개그 입니다. 악역 캐릭터들은 호시탐탐 먹잇감 표적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매 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을 잡아먹거나 혼내주려는 온갖 트랩이나 술수를 쓰게 됩니다. 이에 주인공들은 매 순간 재치와 운으로 오히려 이들을 혼쭐 내주며 보는 이들을 통쾌하게 합니다.

 사실 아시다시피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러한 느낌의 작품이지만 점점 에피소드가 더해지면서 느끼는 관중들의 반응이란 정작 이건 단순히 '먹잇감을 찾으려는 본능' 을 넘어서서 나중에는 그저 매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캐릭터들간의 주도권 싸음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톰이 제리를 잡아먹지 않아도 굶어 죽지는 않으니까요. 주인이 알아서 먹이를 주니 톰이나 실베스터는 먹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은 있으니까요.
 
 사실 예전에는 그저 이런 식으로만 작품을 해석했습니다. 아이들도 톰이 고양이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생쥐인 제리를 못 잡아 안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적어도' 그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톰이 악역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반대로 제리가 못된 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대다수의 어른들은 제리보다는 톰, 로드러너 보다는 코요태를 지지하게 되니까요.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논란거리' 라도 되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어진 이상 먹고 살아보자는 불쌍한 고양이나 코요태를 '복수' 라는 이름으로 '되로 받고 말로 주려하는' 생쥐나 뻐꾸기가 좋게 보일리가 없습니다. 사실 극중에서도 제리나 트위티가 먼저 와서 시비를 걸거나 이미 죗값을 치루고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던 톰이나 실베스터에게 추가타로 못된 장난을 하는 '지나친' 장면도 등장하게 됩니다. 

 저는 예전부터 톰이 매우 사악하고 못된 고양이로 보였지만 어느새 부터인가 재방영된 톰과 제리를 보니 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톰과 제리는 매일 지겹도록 싸우는 관계이지만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적절히 동조를 하거나 협동심을 발휘하기도 하는 우정관계의 캐릭터들이었죠. 

 뭐랄까...분명 먼저 당하는 입장이긴 한데 매번 요리조리 톰의 트랩을 빠져나가며 앙갚음을 되돌려주는 제리가 몹시 미워졌습니다. 어른이 되어 순수성을 잃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 작품의 본래 의도가 그런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 제게 먼저 보이는 시야로는 오히려 제리보다는 톰이 더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었거든요.

 어린시절에는 그저 '어쨌든 당하니 불쌍하다' 라는 인식이 있었지만...생각해 보면


톰에게는 주인과 불독이라는 실권자가 있다. 때문에 제리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제리는 이들에게서 만큼은 자유롭다.

톰이 쥐를 잡지 않으면 주인에게 쫒겨날 판이다. 그리고 매번 제리와 다툴 때마다 상당한 부상을 입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잊고 평온한 시간을 가지려 할 때 제리가 먼저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트위티나 실베스터 역시 한 집안의 애완동물이지만 트위티가 단순히 맛있어 보여서 공격을 하는 것만은 아니죠. 트위티는 상당한 독설가 입니다. 코요태는 대지의 무법자 이지만 오히려 모든 능력 면에서 로드런너에게 비할 바가 아니죠. 벅스버니는...말 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항상 강자의 위치에 있으리라 기대되던 녀석들이 의외의 동물들에게 비참히 당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기는 합니다만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리가 아무리 통쾌하게 톰을 물리쳐 주어도 기분이 편치 않습니다.

사실, 어른이 되어 '현실' 에 서게 된 지금의 우리들 모습은 트위티나 제리와 같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매번 사회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 없이 높은 스팩' 만 갖추기를 요구받고, '당연히 높은 위치에 서야 하는 것' 처럼 여겨지는 힘든 현실에서 매번 강자인 척 해야하며, 아픔과 고통을 느껴도 내색 없이 싫은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그런 불쌍한 악역들의 위치에 서야 할 때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덧글

  • 콜드 2009/09/14 06:49 # 답글

    초등학교 때 보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보니까 한 마디로 악역들이 참 불쌍하게 느껴지더라고요 ㅠㅠ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 프리큐어같은 미소녀물들도 무진장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아무나 악역하는 게 아니다(퍽!)
  • 쓰레기청소부 2009/09/15 22:21 #

    악역들은 보통 힘든 위치에서 어렵게 노력을 거쳐 올라온 케이스 들이죠. 하지만 반대로 나온지 얼마 안 된 주인공들에게 당하는 것도 좀 불쌍하기 이를데 없지요
  • 파애 2009/09/14 12:53 # 답글

    아 심슨가족에서 나오는 고양이 쥐만화가 생각이 나는 군요 ㅡㅡ;;
  • 쓰레기청소부 2009/09/15 22:22 #

    아,...그건 저도 보지 못했군요. 무슨 내용이닞 궁금하군요
  • 파애 2009/09/15 22:25 #

    아 이치와 스크레치인걸로 기억해요

    바트와 미사가 고양이가 (누가 고양이인지 모르겠...) 쥐를 폭파 시켜 버리는 장면을 10년 동안 기다렸다는 말이
    기억 나는 군요;;
  • Niveus 2009/09/14 13:38 # 답글

    고길동씨에게 공감을 느끼면 어른인겁니다(...야!?)
  • 쓰레기청소부 2009/09/15 22:22 #

    일단은 믹구 작품만 예로 들었지만 고길동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 맞습니다. 알고보면 길동형님처럼 불쌍한 가장도 없지요
  • 플로렌스 2009/09/14 19:26 # 답글

    저도 어렸을 때 톰을 응원하던 편이었지요. 집고양이라면 당연히 집의 쥐를 잡아야...!
  • 쓰레기청소부 2009/09/15 22:23 #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들 중에는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시중의 캐릭터 상품도 마치 톰이 악역인 것처럼 세우고 있으니 말이죠.
  • 붉은바람 2009/09/14 22:55 # 답글

    불사신 톰은 요즘 보면 정말..
    참혹하죠
  • 쓰레기청소부 2009/09/15 22:23 #

    물리학 이론을 뛰어넘은 참혹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죽지않고 그 고통을 다 받나 봅니다....흐윽
  • 영원제타 2009/09/15 22:03 # 답글

    톰과 제리야, 톰이 제리를 잡아먹으면 그냥 연재 종료기 때문에 그냥 아웅 다웅으로 끝나야 겠지만,
    둘리만큼은 고 길동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 쓰레기청소부 2009/09/15 22:24 #

    톰이 제리를 잡아 먹으면 이제 불독과의 쟁탈전이 기대됩니다. 그 때는 반대로 톰이 당하는 신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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