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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씁쓸해지는 애니메이션... 12


 뾰로롱 꼬마마녀(원제: 마법의 천사 스위트 민트)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1995년에 공중파를 통해서였고, 당시 은은한 풍의 주제가와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훈훈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던 작품으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첫 편에서 빗자루 대신 진공 청소기를 타고 등장하여 이리저리 나대다 마녀 할머니에게 혼나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첫 편에서 무지개 언덕의 경관을 보게 된 주인공 민트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인간세계의 지표로 알려져 있는 그 화원의 전경은 민트가 상상했던 대로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가 수놓은 환상의 꽃밭이 아닌, 검푸른 색으로 도배된 참흑한 숲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세계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이겠지요. 

 그리하여 12세 생일을 맞게 된 민트는 왕가의 전통에 따라 인간세계로 진출하여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아주 '잠시동안' 말이죠. 여러분들중 대다수는 아마 이처럼 참신한 설정이 이 작품의 매력에 있지 않을까라며 줄곧 시청하셨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전의 요술공주 밍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요술소녀의 주된 특기는 바로 '마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입니다. 그 범위란 개인의 일상이나 작은 에피소드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이들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 같다라는 신념이죠. 실제로 작품에서 민트와 접한 많은 이들은 작은 일상에서 크나큰 행복을 얻기는 하지만 이것이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하튼 예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다' 라며 보았던 기억만 잔뜩 생각나지만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지니 이 어여쁜 요술공주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에도 제가 기억하는 에피소드 중에서는 '진정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구해 준 적이 없거든요. 

 사실 마법세계의 존재 이유가 인간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민트가 화려한 마법술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을 도와 준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에피소드 중에서는 '해결 난이도가 높은 처지' 의 사람들이 등장했던 적은 없었으니 말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하려는 아이나 치료비가 없어 죽음에 이르른 환자, 혹은 억울하게 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간 사람 등...뭐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에피소드가 나왔다간 오히려 문제가 될 소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제가 이 뾰로롱 꼬마마녀에 대해 가장 큰 실망을 느꼈던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극중에서 표출된 '행복과 불행의 관계' 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가난하거나 큰 병에 걸려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절대 행복하지 못한 처지' 라 할 수 있겠지만 실상 현실세계에서 가장 많은 케이스를 자랑하는 불행의 요인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불행한 사실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그 사람들과의 공존 때문에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옆집의 아이와 싸워 관계가 틀어지는 것과 같은 문제는 마법 따위가 아니더라도 속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크게 보면 인간의 불행 요소의 주원인은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 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죠.

 쉽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면 굳이 죽도록 노력해서 명문대라는 곳에 갈 필요도 없을 것이고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수술을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가난하다거나 부유하다는 인식 자체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성처를 주었던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도 없겠죠. 결국,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는 상태라면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대한 기준이나 인식 자체도 모호한 수준이 되겠지만 말이죠...
 
 결국 우리의 꼬마마녀 민트는 인간이 왜 불행한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일에 뛰어든 것입니다. 자신의 작은 노력이면 무지개 화원은 다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극중에서의 그는 단순히 사람들을 마법의 힘으로 현혹시키는 것이 인간세계를 구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 이는 잘못된 관점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만화(혹은 특정 작품이라도)가 유치하다' 라고 느껴지는 시기는 바로 이러한 '현실의 인식' 을 최고의 가치판단기준으로 설정하기 시작한 때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뾰로롱 꼬마마녀는 현실성 0%로 절대 개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은 아닌 것이지요



 그렇다면 화제를 돌려서 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까요. 사실 어찌보면 인간의 행복이 어떻고 뭐고 간에 이 작품에서의 초점은 인간의 행복 따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할수도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민트가 인간세계로 간 이유는 바로 '권력을 얻기 위해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위를 계승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굳어진 관습을 따라야 할테니 말이죠. 그리고 극중 1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민트는 처음부터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마음' 은 없었습니다. 그저 무지개 화원의 꽃이 더럽고 추해 보여서 실망스러웠는데, 그 화원을 민트의 구미에 맞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게 하려면 인간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조건을 마녀 할머니에게 듣게 된 것 뿐이죠. 

 결국 자신이 곧 통치할 나라의 국경쯤 되는 토지가 엉망인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데, 마침 인간세계로 진출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면 그 화원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었던 기회가 온 것이죠. 더군다나 이 '정식코스' 를 밟으면 왕권도 준답니다. 누가 안가겠습니까. 비록 작품상에서는 아버지에게 떠밀려 인간세계로 가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따져본다면 민트가 이제껏 보여주었던 모습은 바로 가식적인 인간의 면을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극중에서는 민트가 순수한 어린 여자아이인 양 묘사되고 있지만 민트가 인간계에서 활약하게 된 전황을 살펴본다면 오히려 상식적으로는 그녀가 순전히 봉사하기 위해 마법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인간들이 있는 세계에 내려와 매일매일 무료알바를 하면서 어쩌면 민트는 하루라도 빨리 마법세계로 돌아가 왕권을 손에 쥘 날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추한 모습의 무지개 화원 역시 자신이 무료봉사를 하고 마법세계로 돌아가면 이미 그의 권위와 신분에 걸맞게 아름다운 전경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요. 이런 사실을 위안 삼으며 지금껏 민트는 사람들에게 거짓 웃음과 말장난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었던 것이 아닐지요. 


 만약 이런 극단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애초에 인간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됩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결국 이 작품의 중심 스토리란 권력과 토지욕심에 사로잡힌 여자아이가 인간을 도구로 삼아 왕권 계승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이 작품은 인간의 행복과는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처음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더불어 사는 사회' 로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 이라고 했습니다. 수 많은 인구가 한정된 공간에서 더불어 살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혹은 모든 재물을 개인이 원하는 대로 얻을 수가 없는 것이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신적 갈등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기껏 행복의 가게 하나 운영한다고 해서 인간세계가 행복으로 가득 찰까요? 앞서 말했듯이 결국 문제는 민트나 마법세계의 사람들이나 모두 인간의 행복과는 전혀 동떨어진 방법론을 택했다는 것이죠.


 결국 양 쪽의 관점을 모두 종합해 보니 이 작품은 상당히 우울한 마법소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의 리얼리티와 현실에서 말하는 리얼리티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에 이런 독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있겠습니다만, 나이가 들고 감성이 부족해 지면서 상황과 관점에 따라서는 '뾰로롱 꼬마마녀' 가 진짜 '마녀' 로 보일수도 있다는 것이죠. 10년 전이었다면 몰라도 지금 제 곁에 민트처럼 깜찍한 요술소녀가 있어 봤자 제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니까요.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덧글

  • Cailia 2009/09/16 07:58 # 답글

    ...셀렉션 비디오 테이프 VOL.1을 만엔 들여 낙찰했더니

    다음날 동일가격에 LD가 3장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씁쓸했었습니다(...)
  • 쓰레기청소부 2009/09/16 14:37 #

    DVD복원판도 나왔다고 알고는 잇는데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소장용으로는 LD가 가장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당한 매니아층이 있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구하기기 어렵다는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 blitz고양이 2009/09/16 09:01 # 답글

    저 아이가 사는 나라에도 불행이란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것을 보고 있던 다른 세계의 또다른 마법소녀가 그 나라에 행복을 주려고 오는데, 또다른마법소녀가 사는 나라에도 불행은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또또다른 마법소녀가 파견되는데 역시 또또다른그나라에도 붊앵해ㅔㅂㅎㅂ;햦대햡 ㅈㅎㅂㅈ댯;;;;

    그렇군요.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을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라는 말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는 거네요.
  • 쓰레기청소부 2009/09/16 14:33 #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의미와는 좀 다른 것이 아이들을 위해 구성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죠. 의도적으로 저렇게 구성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저런 것에 대해서는 보통 생각이 없음므로...
  • 모모맨 2009/09/16 09:09 # 답글

    일단 두 작품의 작가(극본) 이 같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인간의 행복를 도와주기 위하여 몸소 내려온 두 공주님이지만, 말씀하신대로 적당히 어려운 사람들를 적당히 도와줍니다.
    사실 작품의 특성상 아이들 상대 소재라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는 못 하고 시정자들의 환경의 맞추어 진행 하다보니.. 좀 그럽습니다.
    다만 작품속에서 (각각의 에피소드가 아니고) 이러한 문제점를 제시는 합니다.. 당장 옆집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를 한다고 그 아이가 평생 행복한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마법이 필요 없다고 나옵니다.

    즉 원래 주제도 마법이 행복를 가져다주지는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행복를 찾아야한다고 작품속에서 나옵니다.

    몰론 대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요...

    기회가 돼면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쓰레기청소부 2009/09/16 14:36 #

    문제는 작품 속에서 마치 생색내기식의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예전 요술소녀물의 특징 중 하나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는 모티브였는데, 그나마 결말 부분이 그런 타라 그 작품에서는 인간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어필을 하기는 하죠. 하지만 이 작품은 다릅니다. 보다보면 주인공은 결국 마법을 쓰고 마법나라로 돌아가거든요. 다만 아이들에게는 마법이 최고다 라고 보여주면 좀 그러니 어설프게 작품 중 그런 메시지를 풍기기는 하죠.
  • 백금기사 2009/09/16 15:48 # 답글

    솔직히 마법이 있어도 인간세상은 구제 불능... 꿈도 희망도 없어...

    ...라는 애니를 만들면 누가 좋아할까... 싶었는데 초대 밍키의 참혹한 운명이나(막판에 꿈꾸는 얘기는 그냥 꿈으로 끝났고)

    2대 밍키의 또 다른 참혹한 운명을 생각하면 구태여 저 작품까지 그렇게 만들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밍키의 주제는 '이 세상에는 꿈도 희망도 없으니 백일몽 속에서 잠시라도 행복해지세요' 일지도요.
  • 모모맨 2009/09/16 16:47 #

    작품중에 이세상에는 마법에 의한 꿈과 희망은 없다는 애기는 있습니다. 다만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마지막에 마법를 포기 하고 자신의 힘으로 꿈과 희망를 찾아라는 공통 분모는 있습니다... 거의 마법소녀 시리즈물의 결말이 그러하지요...
    마법이 종착역이 아닌 하나의 수단이라는..
  • 쓰레기청소부 2009/09/17 02:52 #

    인간의 노력으로 삶이 나아진다면 진작에 세상은 밝았을 듯...밍키와는 다르게 스위트 민트는 미려하고 은은한 색체의 느낌을 가지는 작품이지만 그만큼 현실과는 매우 배반적이죠.
  • 아돌군 2009/09/16 19:46 # 답글

    9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스위트민트를 얼핏 썸네일만 보고 '미쿠'라고 할 듯.;
  • 쓰레기청소부 2009/09/17 02:52 #

    딱 90년에 태어난 아이라면 기억 하겟지만 생각해 보면 미쿠의 짝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군요
  • asdf 2011/05/21 14:24 # 삭제 답글

    열두살난 마법 마법의 천사가 그런 일면을 가지고 있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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