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동정 최노인 : 사람이 정말 줄을 잘 서야 하는 이유

작성시간 : 2013/09/22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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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세상만사 잡담
작성자 : 쓰레기청소부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 처음 입사했을 때 일입니다. 대략 기본적인 교육을 마친 후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배치면담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배치면담은 인사담당자의 주관 하에서 이루어졌으며, 기본적으로 당시 신입사원들이 가야 할 길(?)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긴 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부서를 적어서 제출하면 어느정도 검토를 해주긴 했던 분위기였습니다.

여러 명의 사원들이 인사담당자와 면담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섰습니다. 문제는 줄을 서는 순서가 랜덤이라는 것이죠...그저 먼저 온 사람이었거나, 주위를 배회하다 대충 끼어들었거나...어차피 먼저 면담을 받는다고 해서 크나큰 이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다지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예정된 수순에 따라 면담을 받고 오긴 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저 잘리지 않고 입에 풀칠을 하려면 회사가 원하는 부서로 굽신굽신 하듯이 순순히 배치되어야 함이 마땅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왕이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시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기회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면담을 마친 후 결과발표가 있었던 날, 매우 충격적인 배치결과가 별표되었습니다. 배치면담 당시 바로 제 앞에 줄 서 있었던 분이 '매우 좋은 부서' 로 알려진 곳으로 배치되었던 것입니다. 본래대로라면 그 분은 전혀 다른 부서에 배치되어야 했을텐데 말이죠.

사정을 알고보니 마침 그 '좋은 부서' 에 사람이 급히 필요했나 봅니다. 갑작스런 오퍼가 들어오는 바람에 인사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자원자를 받아 끌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첫 번째 배치면담 하는 사람부터 계속 '그 부서에 들어갈 생각이 없냐' 라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모든 사원들이 그 부서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다들 거부했다고 합니다.(그 좋은 기회를...) 이름만 들으면 뭔가 생소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부서에 가겠다고 자원하려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이전까지의 면담자들이 모두 거부를 했기에 바로 제 앞에 줄을 섰던 그 분 역시 똑같은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분의 증언에 의하면 생소한 부서이긴 하지만 '왠지 좋은 feel' 이 느껴져서 '그냥 OK' 사인을 내렸다는 군요. 당연히 그 분은 그 부서로 배치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저는 그 부서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기회' 는 바로 제 앞에 줄을 서 있었던 그 분이 가져가셨습니다...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정말 한끝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순간이죠.

만약 배치면담 당시에 제가 1초만 더 빨리 와서 줄을 섰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대충 모른 척하고 그 분 앞으로 새치기라도 했다면? 아마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소리를 군대에서도 귀가 빠지도록 듣긴 했지만 역시나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 수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어린애처럼 땅을 치며 괴로워할 부분은 아닙니다만, 힘들 때마다 그 때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어찌한들 그 때의 희비를 바꿀 수가 있었겠습니까. 후회나 미련이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지금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도록 연명해 나가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