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탈모약 처방 때문에 피부과에서 있었던 일... 1


 일전에 탈모약(프로페시아) 처방을 받기 위해 2차 병원 피부과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 수준의 피부과 에서도 처방은 가능하지만 일단 처음이기도 하고 요새는 피부 자체를 치료하는 곳 보다는 피부관리니 에스테틱이니 뭐니 하는 미용 위주의 피부과가 많아서 자칫 잘못 방문했다간 본인이 탈모라는 것만 간호사에게 인증하고 헛탕만 치고 나오는 참사를 당할 수 있기에 일부러 2차 병원에 방문했던 것이었죠.

 접수대에서 번호표를 탈거 후 대기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본인 차례가 되어 자리를 박차는 순간...담당직원이 여성인 것을 보고 순간 '흠칫' 했습니다. 원래 남자들은....아니 민감한 질병에 걸린 대다수의 사람들은 담당직원의 성별까지도 정신적인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써 뽑은 번호표를 포기하면 수 십명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접수대로 몸을 운반했습니다.


 담당 여직원이 제게 매우 형식적이고도 필수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본인은 굳이 탈모 치료제를 처방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부과 진료 보러 왔습니다'

 그 직원분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제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구요!'
  

 '피부과 왔다고 말하면 됐지...증상은 왜 물을까...결국 사실을 말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며 체념한 본인은 결국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탈모 때문에 왔습니다.'


 헌데 그 직원분은 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듯 또 갸우뚱 하더니 다시 제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예?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래요?'

 
 말하기 부끄러운 사실을 두 번 말해야 한다는 사실에 본인은 정신적 내상을 입고 좌절했지만 담당직원이 계속 물으니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탈모요. 탈모 때문에 왔어요'


 근데...그 직원은 다시 한 번 갸우뚱 하다는 표정을 취하더니 다시 제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예? 예? 뭐라고요? 다시 말씀 해주세요'


 분명 작지 않은 소리로 말했는데...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종합병원이라 접수대 근처에 사람도 많은데 이쯤되니 슬슬 수치심과 창피함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뭔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제가 그 담당직원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접수를 해주지 않을 기세여서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더 크게 해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탈모요! 머리가 빠져서 약 처방받으러 왔다구요!!!' 


 
 마지막에는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한 덕에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차마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사실을 몇 번이나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주변 사람들이 듣지 않았다고 해도 공공장소에서 본인의 민감한 사실을 언성 높여...그것도 몇 번이나 말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심각한 수치심과 정신적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다행히 직원분은 본인의 마지막 답변은 제대로 들었는지 일사불란하게 접수를 처리해 주었습니다.(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습니다.) 접수표를 들고 고작 2층에 있는 피부과를 향하는 계단에 발걸음을 올린 본인의 다리는 왜 이리도 후들후들거렸는지...그리고 이미 정신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왠지 그 순간 제 머리카락도 수 백개 쯤은 빠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구요)

 본인이 민감한 것인가요? 진료과가 확정되었다면 환자의 증상은 의사에게만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접수대에서는 저런 창피한 에피소드가 발생하긴 했지만 당시의 본인은 '의사와의 상담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접수대에서 미리 증상을 물어보는 것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애써 잊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1시간이 마치 8시간이나 다름 없었던 기나긴 대기시간을 이겨내고 피부과 전문의가 있는 상담실로 들어간 순간 의사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죠?'


      

written by 쓰레기 청소부



덧글

  • Mirabell 2016/12/05 02:37 # 답글

    아... 이거 정말 심각한 내용인데 너무 적절한 그림을 올려놓으셔서 조금 웃어버렸네요... 탈모 이게 본인한테 적용되면 정말 미치죠.... 저도 약간의 탈모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정말..... 치료 잘받으시고 더 악화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ㅠ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39126
817
8878804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86

애니메이션 편성표 - 애니시아